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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어서.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섬’은 어려웠던 배경을 설명하는 일종의 보호 장치였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이었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악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 그것뿐이라면 ‘오늘, 제주’는 세기말 우울감이 짙게 감도는 어느 도시의 느낌이었을 터다. 하지만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 한다. 이게 뭐지, 과연 무엇이 있는 것일까.
출처: 제주관광공사, Visitjeju.net
‘제판(濟坂)항로’ 개항 100년
올해 제주에 등장한 키워드 중에 ‘제판(濟坂)항로’가 있다. 메이지유신 후 일본의 근대화·산업화 속도가 빨라지는 사이 말 그대로 ‘기회’ 하나만 보고 바다를 건넜던 제주 사람들의 서사를 상징하는 단어다. 일제강점기 일본식 자본주의 구축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득을 취하기 위한 자본 잠식과 시장 장악 공세는 셈보다는 정에 기울었던 그 시절 조선, 특히 제주 사람들에게는 대형 태풍 수준이었다. 물론 그 기회가 모두 분홍빛은 아니었다. 근대화 속도와 전쟁 여파까지,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일본의 사정은 ‘기회’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입 하나는 줄이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이유는 태어나 섬을 떠나는 큰일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람들의 등을 바다 건너 이국까지 떠밀기에 충분했다.
제판항로는 제주와 일본 오사카(大阪)를 잇는 1923년 ‘군대환(君が代丸·기미가요마루)’, ‘제판(濟阪)연락선’의 취항으로 열렸다. 당시 제주 인구의 ‘4분의 1 이상(1934년 추산 재일제주인 5만 명)’이 이 바닷길을 통해 일본행을 선택했을 만큼 엄청난 역할을 했다. 사람만 나간 것이 아니라 그동안 멀었던 정보와 문물 같은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왔다.
섬 안의 변화가 늘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분명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이끌었다. 제판항로가 열렸던 것은 그 만큼 수요가 있었다는 얘기도 된다. 일본 오사카에 남아 있는 제주 관련 자료를 보면 제판항로가 열리기 전인 1915년 4월 제주-부산 항로 개설 이후 제주에서 건너간 ‘자주(自主)’도항의 흔적이 종종 발견된다. 이후 제주에서 계절근로자 성격의 사람을 모집하는 광고가 등장하고, 그다음 제판연락선 취항의 수순으로 이어진다.
현해탄 건넌 제주해녀들
‘다음’을 믿고 움직이다
그래서 일본을 통해 얻거나 받아들인 것들만 있었는가 하면 ‘다음’은 보다 더 흥미롭다. 해녀의 예를 들어보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피해 감태 채취 등 노역으로 일본에 건너간 해녀들의 삶은 퍽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긴 노동시간은 물론이고 낮은 품삯과 비인간적인 처우 속에서 깊고 험한 바다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현지에 남은 해녀들은 현지 텃세를 피해 점점 먼 바다로 갔다. 처음은 오사카에 밀집됐던 해녀들의 흔적을 치바현 미나미보소(南房総總) 아와군 쿄난마치(安房郡鋸南町)까지 가서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지역 90대 노 아마(海女)의 기억은 특별했다. 줄잡아 70여 년 전 제주해녀들의 작업 광경은 작은 어촌 마을을 뒤집었다.
남성들이나 하던 깊은 바다, 먼바다 작업을 하는 것도 대단했거니와 가족, 특히 자식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마을 분위기까지 바꿨다.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했고, 목소리를 모아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과정과 부지런히 노력(공부)하면 대도시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내면서 지역에 주민협의기구가 만들어지고 평균 소득이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교육열까지 후끈 달아올랐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저 그럴 수도 있는 ‘그때는 말이야’가 아닌 사연은 더 있다. 제판항로를 독점적으로 운영하던 조선우선(朝鮮郵船)과 아마가사키사(社)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오사카 거주 제주도민들이 운임 인하와 대우 개선을 목적으로 ‘자주 운항 운동’을 시작하고 동아통항조합(東亞通航組合)이라는 선박협동조합(1929년)을 만들어 직접 배를 띄운다. 지역단체와 연대에도 불구하고 좌초 사고와 경영난, 일본 당국의 탄압 등으로 1934년 해체하기는 했지만 방법을 찾고 움직였다.
재일제주인의 삶을 그린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일본 개봉명: 야키니쿠 드래곤)’
각인된 경험 그리고 로컬화
스스로 길을 내는 기세라 쓰고, 제주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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