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올해 강한소상공인 성장지원사업 1차 오디션에 통과한 로컬 브랜드, 100년 가게, 100년 소공인 그리고 제주에서 선발한 기업까지 총 75여 명의 로컬크리에이터가 제주센터에 모였다. 지속적인 사업 영위를 위한 브랜딩 고도화에 초점을 맞추고 전문가 멘토링을 비롯해 다채로운 교육·체험 프로그램과 도내외 소상공인 네트워킹까지 알차게 채운 이번 2박 3일간의 브랜딩 아카데미에서 강하게 성장해 나갈 브랜드의 미래를 목격했다.
고객의 마음에 맞추다
미국의 어느 한인타운에 있을 법한 독특한 인상의 갈빗집이 연 400억 원의 순매출을 내고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복고풍의 타일, 따끈한 숯불 주변을 두른 백색 사기에 정갈히 담긴 한국식 반찬은 이색적이면서도 친근하다. 바로 청기와타운의 이야기다. 청기와타운 양지삼 대표가 브랜딩 아카데미 공통 강연 첫 순서를 맡아 몇 장의 사진과 짧은 영상으로 4년간 가꿔온 브랜딩 철학과 정체성을 명쾌히 보여줬다. 스케이트보드를 들고 모자를 쓴 외국인이 영등포 거리를 걷는다. 도무지 일반적인 고깃집 광고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청기와타운이 문을 연 2020년의 시기와도 맞물려 있다. 양지삼 대표는 “한국 사람이 외국에 나갈 수 없는 코로나19 시국에 이국적인 것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표현될지 고민한 결과”라며 “브랜딩에 정답이 없지만, 남들과 똑같은 것은 피하라”고 조언했다.
외식업은 특히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직접적으로 맞물리는데, 청기와타운의 주요 타깃은 3040의 여성을 필두로 한 가족이다. “함께 온 아이를 위해 미역국을 따로 마련해주고, 콜키지 프리(외부음료 반입 가능)로 원하는 술을 마실 수 있게 하는 등 우리가 대상으로 한 고객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말한 양 대표는 “타깃이 될 고객을 명확하게 정하는 것부터가 성공적인 브랜딩의 시작”임을 분명히 했다. 지금껏 브랜딩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의 경험도 공유했다. “처음에는 청기와타운의 육회 위에 아보카도를 올려줬다. 새로운 육회에 손님들이 영상을 찍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냥 아보카도를 옆으로 치우고 먹더라”며 “다양한 모양과 방식을 시도해 보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하트 모양으로 내보냈는데, 그게 자연스럽게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었다. 생일을 맞은 손님을 위해 미역국을 추가했는데 역시 화제가 됐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양 대표는 “진정한 피드백은 고객이 하는 것”이라며, 브랜드가 주고자 하는 것과 고객이 원하는 것이 일치했을 때의 시너지를 거듭 강조했다.
로컬 브랜딩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
로컬에서 돌파구를 찾다
다음으로는 해녀의부엌 김하원 대표가 제주 로컬 브랜딩 스토리를 들려줬다. 5년간 97% 예약률과 10만 명 방문이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며, 해녀와 다이닝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복합 문화 콘텐츠로 창업 초반부터 명성을 얻었다. 그 전신은 그의 어머니가 암 투병 당시 약 대신 식품으로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직접 만들었던 조청이었다. 제주산 톳으로 만든 조청은 농수산품 콘테스트에서 1,600:1의 경쟁을 뚫고 해수부장관상을 받았다.
성공과 함께 큰 한계도 마주했다. 톳부터 뿔소라까지 온갖 제주 자연산 해산물의 값이 일본 시장에서 좌우되고, 그마저도 양식과 같이 묶여 싼값에 취급되고 있는 것.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답은 제주 바다에 일생을 쏟은 해녀와 지역 공동체에서 찾았다. 120평의 쓰이지 않는 어촌계 창고를 직접 고치고, 버려진 어구로 조명도 달아가며 공연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직원들과 함께 로컬에 스며들었고, 지역 공동체와 하나가 되어 해녀 할머니의 이야기를 공연으로 올렸다. “해녀 할머니와의 직접적인 만남과 엄마의 삶을 돌아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종달리에 자리한 해녀의 부엌 1호점은 특히 30대 중반 이후의 여성에게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며 제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공연에는 고령의 해녀가 직접 출연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부담도 있다. 계속 줄어드는 해녀의 수를 보며 해녀의 부엌도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해녀를 수산업의 일환으로만 보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조명한다”고 밝힌 김 대표는 2호점에 360도의 미디어아트도 겸비했다. “해녀가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외국인들이 놀라워한다”며 “제주의 공동체 문화가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영웅적으로 선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해녀의부엌은 제주 식문화 콘텐츠로 해외 진출을 꾀하며, 해녀와 어촌계의 자립을 도모하고 있다.
2024 브랜딩 아카데미 현장
제주에서 쉬다
아카데미의 이튿날 오전, 기업 CEO들의 심신에 충분한 쉼을 누리는 명상과 어씽 세션이 열렸다. 허브올레에서 향기 가득한 자연을 거닐거나, 한라생태숲에서 체감 예술 요가와 명상을 진행하는 팀도 있었다. 제주 구도심에 위치한 들랑 메디테이션 살롱에서는 이재윤 대표가 참가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 위로 시루떡을 안치고, 틈새로 증기가 빠져나오지 않도록 시룻번을 둘러 바른 참가자들이 요가 매트 위에 나란히 앉았다. 손 위에 한 방울씩 향기를 머금은 오일을 나눠 바르고, 눈을 감은 채로 잠시 고요한 침묵 속에서 회사를 운영하느라 고단했던 스스로에게 가만 안부를 묻는다. 포슬포슬하게 다 익은 시루떡을 접시에 나누고 차를 따라주며 서로에게 덕담도 건넸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평상에 등을 기대고 눕기도 하며 휴식을 즐긴 후에 다시 한자리에 모인 참가자들은 이제 둘씩 짝을 지었다. 등을 맞대고 서로 기댄 채로, 이 대표의 싱잉볼 연주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달콤한 휴식을 만끽했다.
창업가를 위한 명상과 어씽 세션
헤리티지로 무장하다
오후에는 로컬 분과와 헤리티지 분과로 나뉘어 각각 제주센터와 W360에서 맞춤형 강의와 토론을 이어갔다. 2006년 창업 이후 꾸준히 가맹점을 늘려나가고 있는 핸즈커피의 진경도 대표가 헤리티지 분과 100년 소공인, 100년 가게 20개 사 대표를 만났다. 그는 “종이컵의 중간에 구멍이 있다면 물은 거기까지만 찰 것”이라며 “브랜드의 가치를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며 만들어가야 한다”고 전했다.
인류가 만들어 온 유산을 뜻하는 헤리티지는 기업 브랜딩 측면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진 대표는 이를 이름, 제품, 시각 측면으로 나누어 핸즈커피를 예시 삼아 설명했다. “핸즈커피는 이름만으로 손으로 정성스레 만든 커피이자 핸드드립 전문점임을 연상할 수 있다”며 “가치 있는 이름으로 고객에게 진심을 전달할 수 있다”고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커피 맛은 객관화가 될까?” 청중들 사이에서 다양한 답이 오갔다. 개인의 취향부터 원료와 제조 방법도 모두 다르기에 맛의 객관화가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업은 추상적인 것도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이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해야만 팔 수 있다”는 진 대표는 “얼마나 오래 이 일을 해왔는지, 어떠한 자격증을 갖추고 있는지를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주변 경쟁자의 가격과 품질을 분석해 철저한 시장 세분화를 거쳐야 한다”는 말과 함께 핸즈커피의 객관화 전략을 소개했다.
브랜딩에는 색과 같이 직관적인 요소도 빼놓을 수 없다. 핸즈커피 1호점은 ‘커피가 맛있는 노란 집’으로 불리며 유럽 커피숍 같은 고풍스러운 인상을 남겼다. “2021년 리브랜딩을 거치며 전지점의 로고와 심벌마크 그리고 공간과 비주얼 요소가 모두 바뀌었지만, 노란색의 포인트 컬러는 핸드드립 도구와 기계에 여전히 남아 있다”며 “가장 강력한 무기인 색을 활용해 헤리티지를 강조하라”는 그의 조언을 끝으로 참가자들은 팀을 나누어 저마다 브랜딩과 마케팅 방향에 대한 분석과 토론을 함께 했다. 마지막 날에는 공통 회계교육과 작년 강한소상공인에 최종 선발된 모월 협동조합 김원호 대표와의 만남으로 브랜딩 아카데미 3일의 과정을 완료했다. 이병선 제주센터장은 “이번 프로그램이 창업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터가 기업으로 성장하고 글로벌로 확장하는 창업 트랙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며 “브랜딩 노하우나 인사이트만 아니라 이 자리에서 만난 사람이 더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브랜딩과 마케팅 방향에 대한 토론
브랜딩 강연에 나선 핸즈커피 진경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