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센터가 지역 투자 생태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모태펀드 사업에 도전했다. 민간 액셀러레이터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이하 미스크)와 공동으로 모태펀드 지방계정 ‘지역 창업초기’ 분야 위탁운용사로 선정되어 상반기 중 벤처펀드를 결성할 예정이다. 제주센터와 미스크는 앞으로 어떤 스타트업에 주목하며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게 될까? 이병선 센터장과 김정태 대표가 만나 함께 만들어갈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임팩트 투자로 변화를 만들다
이병선 우선 바쁜 일정 중에도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막 해외출장에서 귀국하셨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Praxis Summit에 참석하셨다고 들었어요. Praxis Summit는 기업가, 투자자, 학자, 사회 혁신가 등이 모여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는 행사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참석해 보니 어땠나요?
김정태 마침 Praxis Summit이 이번호 〈J-Connect〉의 주제인 ‘투자 생태계’와 관련이 있네요. ‘멘토’, ‘로컬’ 그리고 ‘창업가’ 이 세 가지가 건강하게 조화되어야 어떤 산업이든 그 생태계가 잘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논의했어요.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앞으로 직면할 문제들을 해결할 창업가를 발굴·투자하고 기업이나 재단, 자산가, 멘토를 어떻게 연결할지를 고민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고민이 제주의 미래를 그려가는 데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병선 그런 고민의 시작은 대표님의 독특한 이력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역사를 전공하셨고, UN에서도 근무하셨어요. 일반적인 액셀러레이터나 투자사 대표님들과는 조금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현재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글로벌 경험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시야가 투자 전략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의 비전을 공유하는 이병선 센터장과 김정태 대표
김정태 예전에는 사업가(Entrepreneur)라는 길을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기업가가 되는 것도 흔치는 않았고요. 그러다 30대 중반에 제 안에 기업가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잖아요. 역사를 배우면서 과거의 결과를 바탕으로 앞을 예상하는 방법을 터득했죠. 또 유엔에서 근무하면서 사회나 환경 문제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고요. 인구, 난민, 환경오염, 물 문제 등 다양한 이슈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배웠어요. 그동안 쌓아온 인문학적인 배경이 저만의 고유한 색깔이 된 거죠. 이런 부분은 미스크가 집중하는 임팩트 투자와 연결되어 있어요. 장기적이고 큰 흐름을 보죠.
이병선 미스크가 2011년에 창립했죠? ‘임팩트 투자’, ‘소셜 임팩트’라는 말이 그때쯤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미스크가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김정태 미스크 설립 당시 저는 자문위원이었는데요, 그때 명함을 만들면서 ‘사회혁신 컨설팅 임팩트 투자 기관’이라는 문구를 넣었어요. 사회혁신 영리 기업으로서 ‘사회혁신’이라는 단어를 거의 처음 사용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사회혁신 분야의 컨설팅과 투자를 목표로 삼은 거죠.
함께 지속가능한 내일을 그리다
이병선 사실 미스크와 제주센터의 관계는 상당히 깊습니다. 제주센터 설립 이래 여러 협업 관계를 맺어왔는데 올해는 모태펀드 공동운용사(Co-GP)가 되었죠. 제주센터로서는 첫 모태펀드 운영을 미스크와 함께하게 됐다는 점도 상당히 기쁜데요, 민간과 공동이 Co-GP를 이루는 경우도 흔치는 않죠. 처음 공동운용 제안을 드렸을 때 흔쾌히 함께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정태 우선, 미스크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민간과 공공이 공동운용사가 되는 일이 흔치 않다 보니 제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제주센터의 협업 요청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제주센터에서도 공동운용사(Co-GP)를 선정할 때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은데요. 저희는 지역 투자를 하면서 느낀 점이 있어요. 수도권에 있는 투자사가 지역에 투자하려면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과 공명하며 호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자칫 그 지역의 특성과 필요를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으면서 제주지사를 만들어 현지 인력을 채용하고 있죠. 결국 지역의 자원은 지역으로 가니까요. 이러한 방식은 제주센터가 추구하는 지역 생태계 전략과 잘 맞아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제주센터도 이런 이유에서 미스크를 선택한 게 아닌가 싶은데요, 사실 저는 제주센터 입장에서 미스크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습니다. (웃음) 왜 미스크에 제안하셨나요?
“로컬과 테크 두 분야의 균형과 시너지가 중요하다는 철학을 공유할 수 있겠다고 기대합니다.”
“제주도는 대한민국이 미래에 경험할 문제들을 선행적으로 경험하는 테스트베드이자 리트머스로서 중요한 지역입니다.”
이병선 제주에서 활동하는 액셀러레이터가 여럿 있고 또 각자 다들 나름의 특징이 있습니다. 많은 액셀러레이터와 협업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미스크는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제주에 뿌리를 내려 지역의 인력을 채용하거나,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창업보육시설인 Route330을 운영하기도 했잖아요. 또 지역에 기반을 둔 임팩트 투자를 통해 지역과 관계를 더 견고하게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죠.
김정태 제주는 저희에게 의미 있는 곳이에요. 2016년에 제주지사를 설립했어요.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유엔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때문입니다. 2030년까지 17가지 주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해결하고자 이행하는 국제사회 최대 공동목표인데, 우리나라에서 17개의 목표 모두가 적용되는 유일한 지역이 제주도더라고요.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는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죠.
그래서 제주도는 대한민국이 미래에 경험할 문제들을 선행적으로 경험하는 테스트베드이자 리트머스로서 중요한 지역입니다. 전기차,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혁신 분야를 먼저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책을 찾고 있죠. 제주를 들여다보면 장기적으로 어떤 투자를 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투자를 통해 지속가능 발전 목표에 기여할 수 있으니 저희에게 제주도는 정말 중요한 지역이죠.
눈앞의 이익보다는 먼 미래를 생각하다
이병선 임팩트 투자라고 하면 재무적 성과를 어떻게 끌어내는지 궁금해하는 분이 많아요. 재무적 측면을 주로 보고 하는 일반적 투자와 어떻게 다를까요?
김정태 여러 가지 좋은 사례를 통해 설명할 수 있어요. 현재 위대한 기업이라 불리는 곳들 대부분은 과거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곳이 많아요. 하지만 그들의 미션과 비전에 공감하고 이를 믿었던 투자자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성공이 있는 거죠. 저희가 정의하는 임팩트 투자는 당장의 재무적 성과보다는 먼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고 이뤄지는 거죠. 또한 임팩트 투자 자체보다 그 이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고요. 창업가의 잠재력은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육성과 성장을 통해 발휘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미스크는 지금 당장 좋은 성과를 내는 팀보다는 10년, 20년 후 사회와 시장이 변화했을 때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팀에 더 관심을 두고 있어요. 지금은 재무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죠.
이병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스크가 운영하는 ‘메리히어’라는 공간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눈에 띄는 입주기업들도 있고요.
메리히어 1~2층에 입주한 ‘리얼월드 성수’
김정태 혁신은 아이디어로만 이뤄지지 않더라고요. 직접 보고, 느끼고, 접근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죠.
‘스페이스 베이스드 이노베이션’이라고 하는데요, 메리히어는 이러한 개념을 구체화한 ‘임팩트 모델하우스’입니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은 대부분 미스크가 투자한 스타트업이에요. 이곳에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보여주고, 협업도 이뤄냅니다. 지하 1층에는 ‘스윔핏’이라는 스크린 수영장이 있는데요, 한번은 저희가 이곳으로 도지사님, 시장님, 군수님 등 지방자치단체장님들을 모신 적이 있어요. 직접 보고 나니 관내의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 내 커뮤니티센터마다 스크린 수영장을 설치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분도 계셨고요. 이후 실제로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죠. 이런 것들이 문서로만 정보를 주고받아서는 쉽게 이뤄지지 않아요. 또 지상 1~2층에는 ‘유니크굿컴퍼니’가 운영하는 ‘리얼월드’가 있습니다. 이곳은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연간 10만 명 이상이 찾아옵니다. 이처럼 메리히어는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이를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임팩트 모델하우스 역할을 하고 있어요.
로컬의 가치와 테크의 가능성을 보다
이병선 미스크가 제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후로 어느덧 23곳이나 되는 제주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어요. 투자를 결정하는 데 특별한 기준이나 미스크만의 관점이 있나요?
김정태 아직은 특정한 범위에 한정하지 않고, 스타트업 생태계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 기여하자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문화를 대표하는 초기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지역형 투자를 많이 하고 있고요. 대표적으로 ‘해녀의 부엌’과 ‘카카오패밀리’ 같은 곳들이죠. 그리고 지역 투자를 통해 관계 자본을 형성했어요. 지역에서 존중받고 신뢰받는 플레이어와의 관계를 통해 얻는 정보도 상당합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 방향을 넓혀가며 23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거죠. 이렇게 지역적인 플레이어를 먼저 담았고, 그다음 단계에서는 유니콘 후보로 성장할 수 있는 ‘네이처 모빌리티’나 ‘브이피피랩’ 같은 기업에도 투자하고 있죠.
이병선 이런 부분이 제주센터가 미스크와 공동운용을 하기로 결정한 포인트인데요. 양사 모두 팁스(TIPS)와 립스(LIPS)를 함께 운영하는 몇 안되는 기관이에요. 로컬과 테크 두 분야의 균형과 시너지가 중요하다는 철학을 공유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죠. ‘당장 크게 성장할 기업’, ‘돈을 잘 버는 기업’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기업이 지역에서 어떤 임팩트를 주고, 어떤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거죠.
김정태 맞습니다. 로컬과 테크,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저희로서는 로컬을 먼저 보고 있어요. 로컬에 대한 이해, 지지, 신뢰 없이 테크만 추종하면 몇몇 좋은 팀에 투자하고는 그다음부터는 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지역 투자를 장기적 이어가려면 지역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필요해요. 이런 접근 방식은 지역의 테크 기업 발굴에도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이병선 제주센터가 개인투자조합 벤처투자조합에 모태펀드까지 더해져 이제 규모 있는 펀드를 운용하게 됐습니다. 펀드를 결성하고 운용하기 시작한 지 이제 4년 차가 되면서 그동안 어느 경험과 노하우가 쌓였어요. 기업을 어떻게 스케일업하고 엑시트까지 가느냐 하는 인사이트가 생겼다 보니 이번 모태펀드 운용사 선정이 제주 창업 생태계에 큰 도약의 기회를 가져올 거라고 기대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니 미스크와 제주센터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잘 협력해서 어느 정도 좋은 투자 그리고 좋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F1 리얼월드 성수
B1 스윔핏
B2 메리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