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로프로젝트는 지역의 요소와 특색을 활용한 창의적인 접근 방식으로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개항로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창길 대표는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건물을 고치는 것을 넘어, 지역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글. 이원복 사진. 홍승진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표
Q. 개항로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개항로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하면 지역에서 본래의 역할을 다한 건물과 거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고 있어요. 과거의 모습을 잘 간직하면서도 현재에 맞는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고, 이와 관련된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지역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중이죠.
개항로프로젝트는 그저 오래된 건물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 도시 곳곳에 있는 오래된 건물에 눈길이 가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살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하는 것들이 흥미로워 집을 보러 다니며 건물에 얽힌 과거의 이야기를 알아보고 다녔죠. 저만의 독특한 취미였던 셈이죠. 오래된 건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좋았거든요. 이후 런던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도 했어요. 이때 우리 주변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경험했죠.
개항로 본부에 전시된 개항로 노포들의 모습
Q. 이후 제주도에서 독채 팬션 ‘토리코티지’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로컬 비즈니스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유학을 마칠 무렵인 2008년 어느 날, 은퇴 후 제주도에서 시간을 보내고 계시던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100년이 된 전통가옥을 구입해 노후를 보내는 계셨죠. 근데 몇 년 살아보니 집이 너무 습해서 살기가 어렵다며 집을 부수고 새로 짓겠다고요. 100년 넘은 전통가옥을 부순다는 말에 놀라서 바로 아버지께 말씀드렸죠. ‘제가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만 꼭 기다려 달라’고요. 한국에 도착해 디자이너 친구와 함께 제주도로 향했고, 직접 집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전통가옥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매력을 더한 집이 탄생했죠. 그렇게 공간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일에 더 관심이 생겼어요. 자신감도 있었고요. 그래서 바닷가 마을 안쪽에 방치된 가옥을 매입하고 여러 브랜드와 협업해 독채 팬션 ‘토리코티지’를 만들었습니다. 건물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마을 전체가 바뀌었고 언론 등에서 큰 관심을 받았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도시재생’이나 ‘로컬 비즈니스’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훨씬 전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단지 오래된 공간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좋았을 뿐이죠. 이후 가평에서는 유휴 별장을 공유하는 비즈니스를, 부산에서는 100년이 넘은 병원 건물을 카페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창길 대표가 운영하는 개항로통닭
Q.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다가 인천, 그중에서도 개항로에 자리를 잡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인천이 제 고향인 만큼 큰 관심과 애정이 있는 곳이에요. 어느 날 영국과 우리나라의 지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한 적이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주요 도시의 위치와 기능이 비슷하더라고요. 인천은 리버풀 그리고 부산과 대전은 각각 런던, 버밍엄과 유사했어요. 모두 19세기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곳들인데요, 영국에서 제조업이 축소되면서 도시가 쇠퇴한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많던 공장들은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갤러리나 카페, 호텔로 바뀌었고, 도시는 문화예술이 넘치는 관광지가 되었죠.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 변화를 맞이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산업 중심의 사회가 끝나고 매력 사회를 맞이한 시점에서, 산업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형 공장과 창고는 오늘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어요. 지금 인천에는 이런 변화를 필요로 하는 곳들이 많아요. 특히 개항로는 오래전부터 있던 60여 곳의 노포들이 자리한 곳으로 누구도 카피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곳이었죠.
Q. 개항로프로젝트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요. 모두가 리더이자, 모두가 팀원이기도 한 데요, 이런 방식으로 운영할 때 어떤 장점이 있나요?
현재 개항로프로젝트에는 10여 명 정도의 크루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따로 채용 공고 올리거나, 면접을 보고 사람을 뽑지 않았어요. 앞으로 그럴 것이고요. 사적인 자리나 일로 만난 사람들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추구하는 바와 가치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한 거죠. 얼마 전에 개항로프로젝트 크루들이 함께 운영하는 사업장을 세어보니 30여 개나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수익 등을 N분의 1로 나누지 않습니다. 새로운 매력이나 가치를 만드는 집단에는 모든 것을 균등하게 나누는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결권, 주도권 등을 모두가 동일하게 나눠 갖고, 모든 의견을 종합해 내린 결정이 과연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까요? 그저 ‘평균’ 혹은 ‘보통’의 것이 될 뿐이죠.
크루가 함께 운영하는 개항면
Q. 말씀하신 것처럼 특별한 운영 방식이 특별한 요소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개항로 맥주’인 것 같고요. 개항로 맥주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개항로의 매력을 지니면서도,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술이었죠. 당시 수제 맥주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에일 위주의 수제 맥주보다는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즐기는 라거로 결정했죠. 그렇게 인천맥주와 협업해 개항로 맥주를 만들었어요. 사이즈는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도록 500ml 병으로 출시했죠. 덕분에 어르신들도 통닭집에서 개항로 맥주를 익숙한 듯 주문합니다. 병에 쓰인 ‘개항로’ 글씨는 이곳에서 50여 년간 나무 간판을 만들고 계신 전원공예사의 전종원 어르신 솜씨고요, 광고 모델은 과거 개항로 극장에서 극장 간판을 그리셨던 최명선 어르신이 맡아 주셨죠. 개항로의 사람과 이야기를 담은 거예요. 다른 곳은 따라하지 못하는 개항로만의 매력이 담긴 것이 탄생한 거죠.
개항로 맥주
Q. ‘마계인천 페스티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최근 이슈가 된 ‘김천 김밥축제’처럼 약점이나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그 지역만의 매력으로 승화시킨 것 같아요.
인터넷상에서 인천을 비하할 때 ‘마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요, 인천의 범죄발생률이 높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말이죠. 실제로 인천의 범죄발생률은 그렇게 높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우스갯소리처럼 ‘마계인천’이라는 말이 밈(Meme)으로 쓰이기도 하죠.
인천은 참 매력이 많은 곳이지만,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이를 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마계인천에서 착안한 ‘마계인천 페스티벌’을 기획한 거죠. ‘마계 달리기’, ‘개항로터프가이 선발대회’, ‘신해철 음감회’ 등 철저히 저희가 하고 싶었던 것과 인천에서만 가능한 것들을 준비했어요. 홍보 포스터에는 시간과 장소를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찾아볼 수 있게 한 거죠. 오히려 많은 사람을 오게 할 목적이었으면 특별한 페스티벌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저는 매력을 만드는 일이 대중의 보편적인 지지를 얻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10명 중 9명이 찬성하는 아이디어가 과연 특별한 아이디어일까요. 오히려 10명 중 3명 정도가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아이디어가 더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봐요. 매력적인 요소를 만드는 과정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으니까요.
Q. 최근에는 ‘마계대학’으로도 많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같아요. 마계대학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지고 있나요?
지금까지 정말 다양한 비즈니스를 해왔는데요, 앞으로 로컬 비즈니스에서는 직관, 전략 그리고 협업이 더 중요해질 거예요. 마계대학에서는 이와 관련된 것들을 가르치죠. 비즈니스에 중요한 것들이야 많지만, 재무·회계나 생산 관리 등 예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져 온 것들은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보다는 어떤 지역이나 현상을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법, 전략적으로 협업하는 법 등을 전달합니다.
Q. 개항로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가장 큰 성과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인천이나 제주도 등 지역에서 로컬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0년 전만 해도 인천에서는 무엇을 하든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인천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죠. 개항로프로젝트가 이런 변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제주도는 더 일찍이 이런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왔고요. 앞으로는 지역에 있는 자원을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그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이 중심되는 비즈니스가 더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제주도를 사랑하고 명예도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잖아요. 이들이 곧 지역의 자원이 되는 거죠. 사람 중심으로 로컬 비즈니스가 이뤄질 때 새로운 협업도 더 많이 이뤄질 것이고요. 저 역시 인천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인천이 미래 지향적이고 더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서 이어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