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혁신가들이 JOIN 2025를 위해 제주에 모였다. 홍콩의 글로벌 VC, 일본의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 인도네시아의 국제기구 그리고 우리나라 창업지원 기관까지 한자리에 모여 국경을 넘어선 협력의 방향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순간에도 창업 생태계의 확장을 위한 의지는 분명했다.
제주 모인 혁신의 목소리
JOIN 2025의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글로벌 세션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혁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 간 협력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며, ‘위기 속의 오픈이노베이션과 협력의 연대’를 주제로 열띤 논의를 펼친 시간이었다. 아시아의 혁신 생태계가 공유되는 ‘지식 허브’ 로서 ‘위기 대응–새로운 기회–과거로부터의 학습–실행 허브’ 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변동 속에서 각국 스타트업이 어떻게 기회를 포착하고 새로운 산업 질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위기 속에서 열린 기회의 창
진성환 상무 IMM인베스트먼트 홍콩 상무
첫 번째 발표 진성환 IMM인베스트먼트 홍콩 상무는 지정학적 위기, 글로벌 경제의 재편 속에서 투자의 판도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메시지로 발표를 시작했다. 특히 중동과 아시아, 한국을 잇는 투자 네트워크의 다리 역할을 해온 지난 1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지정학적 환경 변화가 아시아에 어떤 기회를 만들었는지를 설명했다. 특히 IMM인베스트먼트가 UAE(아랍에미리트)의 스마트팜 기업 ‘ 퓨어하베스트(Pure Harvest)’에 초기 500만 달러를 투자한 뒤, 사우디·바레인·쿠웨이트 등 인접국으로도 발을 넓혔다는 점은 많은 참가자의 관심을 끌었다. 처음 투자 당시만 해도 중동 농업 분야가 한국 스타트업과 산업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지만, 기술 경쟁력과 현지의 필요가 만날 때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후 IMM의 누적 투자 규모는 7,000만 달러까지 확대되었고, 이는 단순 투자라기보다 한국, 중동, 아시아 기업들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는 전략의 결과였다. 진성환 상무는 이 전략이 중동의 대기업·정부·학계·기관과의 신뢰 관계 구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IMM은 한국 대표단이 중동의 주요 기관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매년 4~5회의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고, 이를 통해 여러 한국 스타트업이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진 상무는 “글로벌 확장은 국내 성장보다 몇 배 더 어렵다”며, “IMM 인베스트먼트는 앞으로도 창업자들이 해외에서 실질적인 결실을 맺도록 전 과정을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시아의 다음 성장축은 ‘동남아’
마르코 카미야 UNIDO 인도네시아 대표
두 번째 발표자는 국제기구인 UNIDO(유엔산업개발기구) 인도네시아의 마르코 카미야(Marco Kamiya) 대표였다. ‘국제사회의 지지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 마르코 카미야 대표는 “앞으로 동남아시아가 20년간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권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전망을 인용하며, 동남아시아 주요국들이 중산층 확대를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어 소비 시장의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국가적 의지 또한 매우 강하다. 수상 태양광 발전, 바이오에너지, 수력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의 ‘다운스트리밍 전략’은 한국 기업과의 협력 가능성을 크게 넓혔다. 자국에서 생산되는 원자재를 그냥 수출하지 않고 , 자국에서 가공·정제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인 뒤에 수출하겠다는 정책이다. LG·삼성 등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배터리 공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르코 카미야 대표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해외 공공기관이나 투자자들이 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국제사회에 소개하는 정책 보고서나 공동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한국–동남아–국제기구 간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도시와 기업, 그리고 스타트업의 연대
소라토 이지치 Creww 대표
일본 Creww의 창업자인 소라토 이지치(Sorato Ijichi) 대표는 지난 13년간 일본에서 550개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을 소개했다. Creww는 일본에서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의 오픈이노베이션과 협업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플랫폼이다. 특히 대기업뿐만 아니라 히로시마현, 교토시 등 다양한 기업· 지자체와 함께 문제 해결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대기업이 자사의 문제나 과제를 공개하면 스타트업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적 솔루션을 제안하고, 이후 PoC(실증)를 통해 실제 사업화 가능성을 검증하는 구조다.
소라토 이지치 대표는 “지역의 문제를 지자체가 투명하게 공개하고, 스타트업이 이를 해결하는 구조가 새로운 공공–민간 협력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일본 국회에서 직접 제안해 통과된 스타트업 투자 세제 혜택 제도는 일본 투자 시장 전반을 활성화한 대표적 성과였다.
Creww는 몇 년 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바로 스페인의 글로벌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의 산하 이노베이션 조직 ‘Real Madrid Next’와도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다. 스포츠 기술 혁신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 운영에 아시아 기업들의 참가 지원을 받았으며, 800건의 지원서를 받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놀라운 점은 최종 선정된 7개 기업 중 3개가 한국 스타트업이었다. 이지치 대표는 “레알 마드리드는 한국·일본·동남아의 생태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본다”며, “아시아의 혁신 생태계가 연결될 때 더 큰 기회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연결된 생태계가 성장의 조건
김기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팀장
마지막 발표자인 김기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팀장은 전국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난 10년간 구축해 온 민관 협력형 창업지원 구조를 소개했다. 한국은 중앙정부·지방정부· 대기업이 함께 생태계를 구축하는 모델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내에서도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한국의 창업 생태계가 이제는 양보다 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많은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심층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기업별 특성에 맞는 투자·멘토링·매칭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 진출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K-스타트업 그랜드챌린지(KSGC)에 대한 소개도 이어갔다. K-스타트업 그랜드챌린지는 한국과 아시아· 미국·유럽을 연결하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중 2017년 참여 기업이었던 베어로보틱스(Bear Robotic)는 K-스타트업 그랜드챌린지 참여 후 KT·삼성전자의 투자를 받으며 글로벌 로봇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지막으로 김기현 팀장은 “서로 다른 생태계가 연결될 때 협력의 범위가 확장되고, 단일 기관의 노력으로는 만들 수 없는 시너지가 발생한다”며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시아의 혁신가들이 그린 새로운 지도
각국 기관의 발표 이후 진행된 패널 토론에서는 발표자들이 각국의 정책 환경과 현장에서 체감한 스타트업 트렌드를 공유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생태계가 이제는 경쟁보다 협력의 방식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중동과 동남아의 산업 구조 변화, 일본의 오픈 플랫폼, 한국의 민관 협력 모델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연결된 생태계’였다. 국가 단위의 정책이나 기업의 투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문제들이 늘어나는 지금 혁신의 해법은 단일 국가의 능력을 넘어선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JOIN 2025 글로벌 세션은 제주가 국제적 협력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실험장이었다. 특히 각국의 생태계가 서로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연대와 협력이 가능할지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그 논의는 ‘연결이 혁신을 이룬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귀결됐다. 이는 앞으로의 글로벌 협력 생태계에서 중요한 방향성이 될 것이다. 국경과 언어, 산업의 구분을 넘어 혁신가들이 제주에서 만나고 이 만남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