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제주센터가 출자자로 참여한 ‘대구·제주·광주권 지역혁신 벤처펀드’를 통해 투자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스케일업에 나섰다. 지난 2021년 제주 한경면 용수리에서 민간 소형 로켓을 발사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면, 이제는 ‘발사체 재사용’, ‘해상 발사’ 등 구체적인 성과를 만들고 있다. 내년 상반기 블루웨일0.4 발사를 앞두고 있다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김수환 이사를 만났다.
글. 김사무엘 사진. 이성근,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 김수환 이사
지난 2021년 블루웨일0.1 발사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발사체 재사용에 필수적인 호버링 기술까지 선보였는데요, 현재까지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성과를 소개해 주세요.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이하 페리지)가 2021년 처음 발사한 블루웨일0.1은 이후 2023년 11월 블루웨일0.3까지 개량되었습니다. 고도 100m까지 수직으로 올라가 허공에서 정지한 상태로 비행하는, 일명 호버링 후 정해진 위치로 수직 착륙하는 데 성공한 단계입니다. 다음으로는 2단으로 구성된 로켓의 상단부에 해당하는 기체 블루웨일0.4를 테스트할 예정입니다. 해상발사 플랫폼 제작, 통신 플랫폼 구축, 인허가 및 주민 동의 등을 마치고 발사에 성공하면, 내년 말까지 모든 로켓을 조립해 ‘블루웨일1’ 상용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해상에서 발사 예정된 블루웨일0.4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나요?
블루웨일0.4는 준궤도에 도달했다가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누리호 시험발사체와 유사하게 하단부의 추진체와 분리된 상단부 로켓이 준궤도에 올라 약 30kg의 탑재물을 운반하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성공한 다음에서야 궤도에 진입한 후 위성을 사출하는 블루웨일1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로켓은 엔진, 연료동체 그리고 이를 제어하는 부분 등으로 나뉘는데, 이 모든 시스템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품단에서는 개발을 마쳤더라도 이를 하나로 묶어 정확히 구동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완성된 발사체를 해상 발사 플랫폼(MLP)에 올리기 위해서 원격으로 바지선을 조종하는 것에도 오차가 없어야 하죠. 발사를 위한 체계를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이 모두 중요한 과제입니다.
블루웨일1의 해상발사 모습 예시
발사체 재사용은 세계적 흐름인 것 같습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도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요?
로켓의 크기를 떠나 발사체 재사용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봐요. 예전에는 바다에 떨어진 발사체를 회수한 뒤 재사용하기도 했고요. 발사체 중에서도 특히 주 엔진과 연료가 들어 있는 하단부는 제작비용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이 부분을 재사용하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X는 이미 2015년부터 당시 주력 로켓이었던 팰컨9의 1단 추진체를 지상에서 회수하는 기술을 사용했죠. 최근에는 크기를 엄청나게 키운 슈퍼헤비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발사대로 돌아오는 것에도 성공했고요. 2단에 있는 추진체 겸 우주선도 목표 지점으로 돌아오게 했고요. 페리지의 블루웨일0.3 발사 시 호버링 기술을 검증한 이유가 발사체 재사용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우주항공청에서도 재사용발사체 개발 계획을 발표했고, 메테인을 연료로 하는 엔진을 적용할 예정입니다.
페리지의 기술이 국가전략기술로도 인정받았죠. 국내 우주항공 사업 동향은 어떻게 변하고 있나요?
페리지가 개발 중인 3t급 액체 메테인 추진제를 사용하는 우주발사체용 극저온 추진제 엔진 기술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국가전략기술로 선정됐습니다. 블루웨일1의 1단부 엔진에 적용될 기술이기도 하고요.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도 액체 메테인 엔진 설계 및 제조기술 과제가 핵심전략기술로 지정됐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주 발사체 연료는 흔히 등유라 부르는 케로신을 사용했습니다. 누리호도 그랬고요. 하지만 케로신은 연소 시 탄소 찌꺼기가 엔진 내부에 점착되는데, 제거에 한계가 있어 엔진 재활용에 부적합합니다. 반면 메테인은 찌꺼기가 거의 남지 않아 로켓 재사용에도 용이합니다. 그래서 블루웨일은 고성능·저비용·친환경 장점을 두루 갖춘 메테인을 연료로 사용해요. 덕분에 발사체 크기는 물론이고 발사대 역시 더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기부 ‘국가전략기술’로 인정 받은 ’우주발사체용 극저온 추진제 엔진 기술
최근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주센터가 출자자로 참여한 ‘대구·제주·광주권 지역혁신 벤처펀드’를 비롯한 투자도 유치했습니다.
우주산업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우주항공청이 신설되는 등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기업 가치가 높아짐에 따라 현재 누적 700억 원 이상의 투자를 받은 상태입니다. 블루웨일0.1 프로젝트 당시 30명 규모였던 페리지가 지금은 100여 명의 고급 인력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대구·제주·광주권 지역혁신 벤처펀드’는 지역혁신기업에 투자하는 성격이고, 페리지도 제주에서 기반을 다지고 있으니 저희의 사업성과 혁신성을 좋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상용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매출로 보답할 날이 기대됩니다.
또 현재 서귀포시 하원동 일대 하원테크노캠퍼스 내 제주한화우주센터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우주센터를 만들고 산업을 키우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것만으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투자 유치나 인재 확보, 기업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스타트업에 정말 중요한 마중물입니다. 당장 구체적인 수치로 그 가치를 환산하기는 어렵더라도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맞물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은 자명합니다.
제주 한림에 해상 발사 거점을 마련하고, 첨단과학기술단지에는 사무공간을 확보했는데요, 어떤 이점이 있나요?
육지에서는 로켓의 발사 시 안전반경까지 확보하려면 비용상의 문제가 커서 해상에 발사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제주는 국토 남단에 위치해 발사각 확보에도 유리한 점이 있고요. 옛 탐라대학교 부지에 조성되는 하원테크노캠퍼스가 정부의 첫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되면서, 페리지 역시 한화시스템과 함께 사업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공항에서 발사체 부품을 옮겨와서 조립하고 해상 거점인 한림으로 옮기기에는 첨단과학기술단지가 그 중간 정도의 위치라 적합하고요. 주변에는 IT 기업이 많이 입주해 있어서, 인공지능 적용 등 다양한 과제를 협업할 수 있으며 인재 확보도 용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협력과 협업이 페리지의 DNA와도 같아 보입니다.
감히 말하자면 페리지는 전국적인 기업이에요. 기술을 연구하는 본사는 대전에 있고, 옥천에는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고요. 가장 중요한 발사를 제주에서 합니다. 해양환경 전문가는 제주 현지에 있죠. 제주대 교수님들을 통해 지금도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우주항공 산업은 국가 단위에서나 연구하고 추진할 수 있는 거대한 분야였죠. 현대에 이르러서야 민간이 기술을 이어받아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페리지도 정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독자기술 개발로 누리호 발사를 성공시킨 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엔진 기술 자산도 넘겨받았죠. 항공우주공학과와 협력해 로켓연구센터를 설립하고 고효율의 연소기와 엔진 제어 밸브를 연소 시험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는 우주청과의 사업 추진으로도 협력 중입니다. 이외에도 달로에어로스페이스나 스페이스빔 등 주요 플레이어와도 함께하고 있죠.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블루웨일 상용화 이후에는 어떤 혁신이 이뤄질까요?
페리지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민간 상업용 로켓 발사를 성공한 사례가 될 겁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정부가 주도하는 지구 궤도권 밖의 우주 탐사 연구에도 동참하고자 합니다. 소행성 탐사 시 로켓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고, 탐사선을 내려보낸 후 다시 올라오는 것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 소형 발사체 상용화에 성공하고 나면, 검증된 시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공용 인프라를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부품을 전문적으로 맡아 연구하고 제작하는 회사도 생기지 않을까 예상하고요.
우리나라는 분명 세계적인 기술 강국입니다. 다만 아직 1등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정부의 의지와 국민적인 공감대를 모아 강한 우주산업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페리지도 그때를 위해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김수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