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섭 제주관광공사 지역관광그룹 PM
제주관광공사가 마을여행 통합브랜드 '카름스테이(kareumstay)'를 선보인 지 1년이 지났다. 로컬 여행이라는 트렌드를 잘 공략했고, 마을여행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마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질그랭이거점센터는 마을과 연계된 제주만의 워케이션 모델을 구축하면서 여행객과 마을주민 모두가 만족하는 새로운 관광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선보인 제주 마을여행 통합브랜드 '카름스테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기존에 지역별로 운영되던 제주도의 마을 관광 브랜드를 카름스테이 하나로 통합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주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지만 유명 관광지에 비해 덜 알려진 마을의 자연환경, 문화, 먹거리, 즐길거리를 홍보하고 관광 상품의 품질을 높여 나가고 있습니다.
젊은 분들은 다소 생소하게 느끼겠지만, '카름(가름)'은 마을을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이에요. 나이 좀 있으신 어르신들은 주변 마을을 동카름(동쪽마을), 서카름(서쪽마을), 웃가름(윗마을) 알가름(아랫마을)이라고 불렀어요. 저희는 그렇게 제주를 크게 네 개의 권역으로 나누고 각 마을을 거점으로 한 여행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스테이(Stay)'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방문객이 지역에 오래 체류하고 지역 내에서 소비 활성화를 이루고자 하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제주를 여행하는 새로운 방법 카름스테이
카름스테이는 각각 동카름, 서카름, 알가름, 웃가름 등 동서남북 각각의 지역을 거점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거점별 특징과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총 10개 마을을 선정해 마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홍보하고 있어요. 동카름은 산과 바다가 모두 아름다운 지역인데요, 오름 일출 프로그램이나 해녀 체험 등을 즐길 수 있죠. 서카름은 반대로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죠. 또 문화시설과 갤러리, 전시관, 체험관 등이 여럿 있습니다. 웃가름은 제주국제공항과 제주항이 있어 제주도의 관문으로 통하는데, 나름 '힙하다'는 곳들이 모여 있습니다. 제주 남쪽의 알가름은 제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귤이 많이 나는 곳이에요. 특히 서귀포시 하효마을에서는 감귤 농장 체험, 감귤 디저트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죠.
카름스테이 마을은 마을협동조합이나 영농조합법인 등 마을 조직체 또는 마을 기업이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선정했습니다. 기존에 청년회나 부녀회 중심으로 진행했던 사업은 임기가 끝나면 지속성을 잃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연속적으로 사업이 이어질 수 있는 마을 조직체나 마을기업이 있는 곳을 선택했죠.
제주도 동서남북, 네 권역의 카름스테이
카름스테이에 대한 정보와 여행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 참여자들의 반응도 궁금하고요.
제주관광공사에서 지속적으로 지역 및 마을 관광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주민과 함께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활성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결국 이런 것들이 대중으로부터 관심받고, 카름스테이가 더 알려지려면 상품성을 갖춰야 하죠.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도록 다양한 민간 플랫폼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마이리얼트립'이나 '프랜트립'에서 카름스테이의 여행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카름스테이 홈페이지(www.kareumstay.com)에서도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요. 대부분 남과 다른 여행을 원하는 젊은 분들이 많이 참여하세요. '제주로 이사 와야겠다', '제주에서 보낸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는 후기도 많이 남겨주시고요.
최근 워케이션 확산이 카름스테이에도 큰 기회가 되는 듯합니다. 특히 동카름인 세화리에 있는 질그랭이거점센터가 워케이션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고요.
세화리는 바다와 오름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워케이셔너에게 관심받는 곳입니다. 그 중심에는 질그랭이거점센터가 있고요. '질그랭이'는 '지긋이'를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에요. 이곳에서 지긋이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 예식장이었던 건물을 리모델링해 1층에는 세화리사무소와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2층에는 제주 특산품으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CAFE477+'이 있습니다. 그리고 3층에 코워킹스페이스, 4층에 숙박시설이 갖춰져 있죠. 질그랭이거점센터는 마을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세화마을협동조합이 운영하고 있어요. 'CAFE477+'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합원 수만 477명으로 전국 마을협동조합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죠. 현재는 더 늘어났다고 해요.
세화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요, 이직이나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질그랭이거점센터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그랬다고 하니, 제 생각에는 한적한 곳을 찾다가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세화로 모인 게 아닐까 싶어요. 저희는 이런 점을 놓치지 않고, 워케이션이나 이직 혹은 취업을 준비하는 20~30대를 타깃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업 워케이션 장소로도 적합하고요.
질그랭이거점센터 2층 CAFE477+
질그랭이거점센터 4층 마을스테이
새화리가 마을여행과 워케이션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마을 원주민과 이주민 간 협업이 잘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세화마을협동조합 양군모 마을PD와 이장님의 역할이 컸어요. 예전에 고용노동부와 제주도가 함께 진행한 '삼춘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삼춘PD로 활동하며 세화리와 인연을 맺었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관계를 이어왔어요. 세화의 매력에 반해 정착했고, 2020년 1월부터는 주민들이 설립한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마을PD로 활동하며 질그랭이거점센터 운영과 관리, 프로그램 진행 등을 주도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인재들이 마을에 유입되고 활동하면서 카름스테이와 워케이션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인구 고령화로 발생하는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 외부 인재를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마을의 사정과 상황에 마을의 상황과 사정에 맞게, 그리고 주민들의 지혜도 잘 발휘되어야 하죠.
한동안 유행했던 '제주 한달살기'의 인기가 예전만큼 이어지고 있지 못하잖아요. 과거에 비추어 워케이션이나 마을여행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점점 워케이션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어요. 이미 모 대기업에서는 제주도에 워케이션 센터를 조성했고요. 이런 것을 보면 워케이션에 필요한 공간, 즉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만큼 업무에 지장이 없어야 하죠. 그리고 지역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할 만한 요소를 만들어 관계인구를 늘려야 해요. 꼭 이사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다시 찾아오고 싶은 곳이 되어야 하죠. 이미 이런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제주관광공사가 도내 스타트업 랄라고고와 함께 세화리에서 '제주 한주살기'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문제집 형식을 빌려 〈제주살이 능력고사〉를 출간하고 농가의 일손을 돕기, 반상회 참가 등을 실기 문제처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죠. 사연 신청서를 받아 10여 명의 참가자를 선정했는데, 모든 일정이 끝나고 주민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눈물을 흘렸다는 참가자도 있어요. 그만큼 만족스러웠다는 거죠. 이런 사례만 봐도 앞으로 카름스테이나 워케이션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가 명확하게 보이죠. 관계인구를 구축해서 정말 제주의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거예요. 나중에 그분들이 마을에 정착할 수도 있으니까요. 제주 외 마을관광 프로그램이나 워케이션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지자체가 있지만, 제주만큼 로컬 콘텐츠와 긴밀한 연계가 이뤄지는 곳은 없다고 자부합니다.
예식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질그랭이거점센터
카름스테이가 워케이션으로도 사랑받고 있는 만큼 워케이션 수요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도 필요해 보입니다.
워케이션은 민선 8기 제주도의 주요 사업 중 하나로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 분야예요. 저희도 카름스테이와 워케이션을 따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 궁극적인 목적은 함께 가는 것이 맞을뿐더러, 그렇게 할 때 더 큰 시너지가 나온다고 봐요. 그래서 워케이션 공간과 마을관광 프로그램이 연계된 '워케이션 빌리지'를 구축할 계획도 있습니다. 빈집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스타트업 다자요 같은 민간 기업도 참여하고요.
제주도 워케이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플랫폼도 오픈할 예정이에요. 워케이션으로 제주도를 찾아오는 분들이 많지만,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 없어요. 따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워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숙소와 코워킹스페이스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관광 자원, 체험 프로그램 정보도 함께 제공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마을여행과 워케이션이 정말 지역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카름스테이에 많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관련 문의도 많아서 여러 스타트업과 로컬크리에이터 그리고 주민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저희는 카름스테이나 워케이션 사업을 1~2년 정도 짧게 보고 있지 않아요. 제주관광공사가 존재하고 지역관광 사업에 가치가 있는 한 카름스테이라는 브랜드 이름으로 직접 관광 콘텐츠를 생산하고, 마을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물론 제주관광공사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쉽게 이뤄지지 않죠. 지역 주민이나 도내 스타트업 그리고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관심과 애정, 날카로운 지적도 필요하죠. 서로를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마을관광과 워케이션의 발전을 위해 함께 카름스테이라는 브랜드를 육성해 나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