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무· 우무솝의 박지훈 대표
제주에서의 삶은 온화하고 여유롭다. 어느 계절에나 완연한 초록을 즐길 수 있고, 출근길에는 종종 노루와도 눈이 마주친다. 이 천혜 자연 한복판에서 건져낸 우뭇가사리로 만든 푸딩이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던 어촌계와 지역 상권의 숨통을 틔웠다. 이제 해외 관광객의 마음마저 완벽히 사로잡으며 제주의 로컬브랜드이자 지역상권의 앵커 스토어로 자리 잡은 우무· 우무솝의 박지훈 대표를 만났다.
우뭇가사리를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우무와 우무솝은 어떤 곳인가요?
저희는 제주 해녀가 채취한 우뭇가사리로 상품을 만들어요. 우무(umu)는 식품, 우무솝(umu soap)은 화장품 브랜드입니다. 우무의 푸딩은 젤라틴과 응고제를 넣지 않아, 탱글탱글한 젤리보다는 부드러운 순두부 같은 식감으로 인기를 끌고 있어요. 방부제도 쓰지 않아 24시간 이내에 생산된 것만 판매합니다. 시그니처인 커스터드푸딩부터 당근이나 땅콩을 넣은 매장별 특화 푸딩까지 하루 1,500병 정도가 꾸준히 판매되고 있어요. 우무솝에서는 푸딩 비누를 비롯해, 핸드크림과 립밤 등 우뭇가사리 추출물을 주성분으로 하는 화장품을 출시했어요. 민감성 피부인 분들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석유화학 성분과 유해성 논란 성분은 배제했습니다.
한림읍 용포리에 있는 우무 매장
우뭇가사리 푸딩은 조금 생소한데요, 주원료로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내인 신동선 공동대표와 함께 해녀학교에 다니면서 제주의 바다를 더 깊이 알게 됐어요. 소라, 성게, 전복, 문어와 같은 잘 알려진 것 말고 우뭇가사리가 바로 제주 해녀 수입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도요. 그런데 국내에서는 소비량이 적은 탓인지 대부분 수출되더라고요. 제주에서 우뭇가사리를 더 가치 있게 활용할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게 푸딩이었습니다. 푸딩에 특화된 전문점도 시장에 없던 상황이라 경쟁력도 충분하다고 판단했고요. 우무만의 푸딩을 개발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품질 좋은 우뭇가사리를 공급받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제주도 내 이곳저곳 안 가본 바다가 없을 거예요. 현재는 가파도에서 난 우뭇가사리를 전량 수매하고 있죠.
우뭇가사리로 만든 푸딩
우무 창업 이전에는 육지에서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고요? 제주에는 어떻게 오신 건가요?
바다를 좋아했던 신동선 공동대표가 제주로 가자기에 그러자고 했죠. 버킷리스트 동호회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들은 말이었지만, 저에게는 사랑이 제일 먼저였거든요. 직장에서는 승진이 보장된 시기였지만, 포기하고 제주로 이주했죠. 그렇게 제주에 왔고, 무엇을 할까 함께 고민하다가 신동선 대표가 한수풀해녀학교에 먼저 선발되었어요. 저는 아내를 데려다주며 구경하다가 해녀복이 남으면 같이 바다에 들어갔죠. 그리고 다음 기수로 저도 합류해 2년을 다녔어요. 해녀의 물질 기술만 아니라 함께 밥까지 먹으면서 해녀 문화를 체험합니다. 생생히 살아 있는 제주의 바다를 경험하고 나니 해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먼저 애월읍에 해녀가 딴 해산물을 듬뿍 올린 ‘해녀파스타’를 메인 메뉴로 한 ‘밥깡패’라는 레스토랑을 창업했어요. 장사는 잘되었지만, 당시 사업이 처음이라 손익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밤낮없는 노동에 비해 정작 남는 게 없었죠. 확장이 어려운 비즈니스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완전히 지쳐서 정말 쉬려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죠. 작은 시골인데도 지역 고유의 자원을 활용한 브랜딩이 매우 잘 되어 있었어요. 브랜딩의 힘을 깨달았죠. 그리고 우리만의 브랜드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다시 바다로 시선을 돌렸는데, 우뭇가사리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게 우무의 시작입니다.
귀여운 모습의 우무 캐릭터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굿즈도 인기를 얻고 있고요.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마지막까지 캐릭터 디자인과 이름을 고민했거든요. 세련되거나 예쁜 것이 아니라, 하찮고 귀여운 브랜드가 되길 바랐죠. 제주 옹포리 작은 마을의 푸딩 가게에는 허술한 캐릭터가 잘 어울리잖아요. 또 사랑에 가장 가까운 감정을 귀여움이라고 생각했고, 캐릭터에도 잘 담아냈죠. 이름은 국적과 나이를 떠나 누구나 쉽게 부르고 기억할 수 있게 우무로 정했어요. 지금은 저희만 아니라 손님들이 더 귀여워해 주시는 걸 보면 역시 귀여운 게 답이구나 생각해요. 푸딩이 매출의 80%라면, 굿즈도 20%나 차지하고 있답니다.
우무솝의 기프트세트
제주시 한림과 남문사거리에 각각 매장이 있는데, 입지 선정의 이유가 있나요?
저희는 경쟁보다 상생을 좋아해요. 디저트 전문점이 없는 동네를 찾았죠. 너무 붐비지 않고 유명하지 않은 곳, 사려 깊고 다정한 느낌의 브랜드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작은 공간을 원했습니다. 한림은 그 당시 저희가 고를 수 있었던 선택지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이었습니다. 2호점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어요. 공사 중에 옆집에 할머니가 ‘다 망해서 나가는 곳에서 왜 장사를 하냐’고 하시더라고요. 만류하는 주변 상인도 있었고요. 그런데 개점 후 손님이 늘더니 거리의 풍경까지 바뀌었습니다. 열다섯 개 남짓했던 상점이 지금은 마흔여 개에 달할 정도로 상권이 활발해졌어요. 6개월 만에 해외관광객도 찾아왔죠. 저희한테는 해외관광객이 필요했거든요. 그 후에 제주의 옛 역사가 녹아 있는 원도심, 공항과도 가까운 남문사거리에 전략적으로 2호점을 열었어요.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당시에 오래된 가게만 남아 있는 상태였죠. 저희는 우무 2호점을 통해 변화되기를 기대했죠. 동문시장, 제주항, 탑동이 무한한 가능성의 원천으로 보였고요. 외국인을 고객을 위해 외국어를 잘하는 직원들을 모았는데, 2호점 개점과 함께 바로 코로나가 터졌지 뭐예요. 당시에는 정말 아찔했어요. 지금은 잘 극복했고,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올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찾아온다니 놀랍습니다.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에는 아는 사람이나 우뭇가사리로 묵을 만들어 먹었지, 대부분 우뭇가사리가 뭔지도 몰랐을 거예요. 제주 우뭇가사리의 존재가 알려졌고, 우무가 친근하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 것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접 경험하기를 원하거든요. 물론 청결한 매장 운영과 상품 제작 원칙 고수는 기본이고요.
포장된 우뭇가사리를 꺼내 작은 잎사귀 하나하나 손으로 세척해요. 두세 봉지 연달아 씻기도 어려울 정도지만, 그렇게 공을 들여요. 매장은 천장과 환풍구까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고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녹아 있는 노력이 오늘의 우무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세척한 우뭇가사리
지난 6월, 우무솝이 강한소상공인 오디션 1차를 제주지역 참가팀 중 1위로 통과했죠. 환경을 생각하는 선크림을 출시하신다고요?
바다가 변했습니다. 10년 전에 제가 뛰어들었던 푸른 바다는 지금과 확연히 달라요. 그래서 산호를 하얗게 만들고 해초를 사라지게 만드는 성분인 옥시벤존과 옥티노세이트가 없는 리프세이프(reef-safe) 선크림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더 나아가 관련 조례까지 바꾸는 것이 목표예요. 하와이나 팔라우 같은 여행지에서는 이미 해변에서 일반 선크림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요. 저는 제주 역시 바다환경을 해치는 선크림 사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이 먼저이기 때문이죠. 강한소상공인 오디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이런 방향성에 대한 동의라고 생각하고요. 우무 역시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용기와 스푼을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인 PLA(Poly Lactic Acid)로 바꿨어요. 로컬크리에이터로서 제주 바다에서 좋은 것을 받은 만큼, 우리도 자연을 아껴줘야죠. 우무가 제주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관련 조례를 바꾸는 데 일조할 수도 있겠죠.
우무와 우무솝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길 원하시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사랑하는 바다가 있는 제주에 왔어요. 그리고 제주의 자연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덕에 여기까지 성장했고요. 저희의 좋은 의도가 변치 않고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국내만 아니라 해외관광객도 즐겨 찾아오는 제주 로컬브랜드로 우무가 더 깊이 뿌리내리고, 제주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