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모란 베지근연구소 대표 · 김진경 소장
연간 천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도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수많은 명물들이 즐비하다. 여러 매체와 창구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지만, 사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매력이 무궁무진하다. 제주도민들과 함께 지역 곳곳에 숨겨진 보석을 발굴하고 있는 베지근연구소의 탐험 정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다.
‘베지근연구소’의 이름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베지근하다’는 제주도 방언입니다. ‘베지근’이라는 단어는 ‘기름진 고깃국물을 먹었을 때 입에 기름기가 감도는 맛’, ‘따뜻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 때 기분 좋게 배가 부른 느낌’ 등을 뜻하죠. ‘기쁜 일’ 혹은 ‘잘된 일’을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제주도만의 표현인 셈이죠. 제주도 음식문화의 발굴과 기록을 주제로 하고 있는 저희 베지근연구소의 정체성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라는 생각에 이름 짓게 됐습니다.
베지근연구소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은 저희 베지근연구소의 방향성은 당연히 지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체로서 작동하는 것입니다. 도민분들의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원도심 활성화, 제주도 문화유산의 지역 환원 등을 목표로 다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고요. 최근 ‘로컬크리에이터’로 선정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을 의미하는 로컬크리에이터 활동을 통해 제주의 역사자원과 음식문화 등의 문화자원,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자원으로 향토음식과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 및 상품을 기획함으로써 제주도의 숨겨진 매력을 전하는 이야기꾼이 되고자 합니다.
이야기꾼이 담아갈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제주도라는 ‘지역’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서 앞으로 어르신들의 참여를 늘려나가 도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합니다. 아울러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제주음식문화 콘텐츠와 상품의 제작을 병행할 예정입니다.
현재 원도심에 머물러 있는 활동 영역을 제주도 전역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롯데 아트빌라스와의 협업으로 기존 올레시장탐방 쿠킹클래스를 프라이빗 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하는가 하면 ‘제주패스’와 함께 제주민속오일장 투어 및 쿠킹클래스 상품을 기획하고 있어요.
제주를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오셨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베지근 연구소는 지난 2 019년에 설립해 대표와 소장이 한 마음으로 운영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장탐방쿠킹클래스를 비롯해 할망식워크숍, 음식인문학 수업, 원도심식품산업사 투어, 원도심 노포 투어, 제주 음식문화 연구 및 아카이빙 등 다양한 사업을 시행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연구소의 이전을 계기로 제주 전통주 플랫폼이자 펍(PUB)인 ‘풀고레’를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어요. 제주어로 ‘맷돌’, 그중에서도 ‘젖은 곡식을 가는 맷돌’이라는 뜻을 가진 풀고레는 제주 전통주와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예전에 제주 어르신들이 가양주로 빚어 마시던 오메기술, 고소리술, 오합주 등과 알코올 도수는 낮지만 누룩으로 만들어 술과 비슷한 맛을 내는 쉰다리, 술 대용 역할을 했던 골감주(차조식혜) 등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주도만의 독자적인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고깃반, 독새기고기튀김 등의 향토음식이 준비돼 있습니다.
제주의 전통주와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공간, 풀고레
제주도 음식문화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제주 음식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잡곡’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라고 여러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에 비해 4배에 달하는 양의 보리를 소모했지만, 이후 지역의 쌀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제주도에서도 보리밥이나 조밥 대신에 쌀밥을 많이 먹게 됐다고 해요. 잡곡을 주식으로 먹었던 흔적은 술이나 떡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곡(주식이 되는 곡물)으로 밥, 떡, 술 음료 등을 만들어왔어요. 오랫동안 쌀을 주식으로 해온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는 쌀로 밥을 짓고 떡을 만들고 술을 빚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의 오메기떡은 과거에 오직 차조로만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 대표적인 제주 전통주인 오메기술도 차조로 만든 오메기떡을 누룩과 버무려 만든 술입니다. 이처럼 제주도에는 메밀과 조 등 잡곡으로 만든 떡과 술이 많았다는 기록이 흔해요.
늙은호박전과 빙떡전
사계절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섬, 제주도에서 봄에 꼭 먹어야 할 향토음식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지금과 같은 봄철에는 ‘자리’를 꼭 먹어야 합니다. 4월에 잡히는 자리는 뼈가 억세지 않고 크기도 작아 제주도민분들은 통째로 초장에 찍어 풍부한 맛을 즐기곤 합니다. 꽤 큰 자리는 머리를 분리해 내장과 비늘을 제거한 다음 썰어 양념을 첨가해 회 혹은 물회로 즐기는 게 정석입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된장으로만 양념하거나, 고추장을 넣더라도 된장보다 적게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회에 제피(초피)를 넣어서 먹어야 진짜 제주도 전통방식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웃음). 물회에 넣지 않은 자리의 머리 부분은 간장과 설탕을 넣고 자작하게 졸여 밥반찬으로 먹습니다. 자리가 조금 더 커지고 억세지는 여름이면 주로 구이나 조림으로 즐기고 젓갈을 담가 보관하기도 합니다.
생경한 제주의 음식들이 신기합니다. 발굴하는 것도 쉽지는 않으실 텐데요.
지금 알려진 제주도 전통음식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향토음식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죠. 책이나 기타 자료로 알 수 있는 건 지극히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요. 제주도의 숨겨진 음식문화를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발굴해내는 것이 베지근연구소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의 숨겨진 전통음식을 찾아내고 이를 외부에 널리 알리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